말기 폐암을 앓던 한 여성이 KRAS 유전자 변이를 표적으로 하는 신약의 1상 임상시험에 참여했다. 수십 년 동안 과학자들이 “약물 개발이 불가능(undruggable)“하다고 불렀던 바로 그 표적이다. 6년이 지난 지금, 그녀는 80대 후반의 나이로 여전히 살아있다. 소토라십(sotorasib)이라는 신약이 효과를 냈고, 임상 시스템이 제 역할을 해낸 덕분이다.
그것이 2019년의 일이었다. 하지만 당시 그 기적을 가능하게 했던 바로 그 시스템이, 지금은 제2의 소토라십이 탄생하는 길을 가로막는 최대의 장애물이 되어버렸다.
최근 뉴욕타임스(NYT)의 심층 보도는 그 심각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1상 임상시험 비용은 2017년 이후 두 배로 폭등했다. 미국 내에서 개설되는 임상시험 수는 줄어들고 있다. 바이오텍 기업들은 호주와 중국으로 임상 현장을 옮겨가고 있다. 그곳의 과학 기술이 더 뛰어나서가 아니다. 최소한 임상시험을 진행하다가 파산하는 일은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환자들은 자국의 연구소에서 처음 발견된 혁신 신약의 혜택을 세계에서 가장 먼저 누리지 못하는 초유의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이것은 제약사의 탐욕이나 규제 당국의 게으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수십 년 동안 쌓여온 구조적 기능 부전—시스템 자체가 스스로의 병목이 될 때까지 위험 회피성 규제들이 켜켜이 쌓여온 결과에 대한 이야기다.
이룸의 법칙(Eroom’s Law): 신약 개발의 ‘역(逆) 무어의 법칙’
2012년 잭 스캐널(Jack Scannell)은 ’무어(Moore)’의 철자를 거꾸로 뒤집어 ’이룸의 법칙(Eroom’s Law)’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1950년 이후 R&D 지출 10억 달러당 승인되는 신약의 수가 대략 9년마다 절반으로 줄어들고 있다는 잔혹한 관찰 결과였다. 과학 기술이 퇴보해서가 아니다. DNA 시퀀싱, 유전체학, 초고속 스크리닝(HTS), 계산 화학 등 모든 기술은 수만 배 이상 발전했다. 인풋 비용은 극적으로 저렴해졌는데, 최종 아웃풋의 비용은 극적으로 비싸진 것이다.
그 원인은 기술이 아니라 구조에 있다.
’조심스러운 규제 당국자’의 딜레마: 탈리도마이드(thalidomide)나 바이옥스(Vioxx)처럼 안전성 문제로 약물이 시장에서 퇴출당할 때마다, 신약 승인의 문턱은 영구적으로 높아진다. 리스크 허용도는 오직 한쪽 방향으로만 움직인다. 반면 ‘지연으로 인한 비용’—관료주의 위원회에서 서류가 오가는 동안 암 환자가 기다려야 하는 그 수많은 시간에 대한 책임은 아무도 지지 않는다.
’비틀즈보다 나아야 한다’는 딜레마: 제네릭(복제약) 의약품의 품질은 이제 매우 훌륭하다. 미국 내 처방전의 90% 이상이 제네릭이다. 환자들에게는 축복이지만, 기존 치료 영역의 신약들은 넘기 힘든 경쟁의 벽에 직면하게 되었다. 결국 신약 R&D는 모델링이 가장 어렵고 실패율이 가장 높은 최악의 난치병—진행성 암, 알츠하이머 등—으로만 내몰리게 된다.
’기초 연구와 무차별 대입’의 편향: 우리는 신약 발굴을 위해 더 강력한 컴퓨팅 파워와 거대한 화합물 라이브러리를 계속해서 쏟아붓고 있다. 하지만 신약 개발의 병목은 분자를 찾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인간 몸에서 안전하게 작동함을 입증하는 데 있다. 초고속 스크리닝은 과거의 전통 약리학보다 빠르고 저렴하지만 생산성은 오히려 떨어질 수 있다. 표적 중심의 접근법은 온전한 유기체(생명체)의 복잡성을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감소 추세는 2010년경 승인 건수가 소폭 반등하며 안정세를 보였다. 하지만 그 반등에는 함정이 있었다. 희귀 질환처럼 아주 좁은 환자군을 대상으로 하는 약물의 승인이 늘어났을 뿐, 흔한 치명적 질환에 대한 획기적인 돌파구가 늘어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1상 임상시험 비용이 두 배로 뛴 이유
NYT 기사는 그 직접적인 원인을 정확히 짚었다. 대규모 상업 생산을 위해 고안된 규제 요건들이, 고작 소수의 환자를 위해 극소량의 약물만 생산하면 되는 초기 1상 임상시험에까지 똑같이 적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제조 기준(cGMP)을 예로 들어보자. FDA의 cGMP 규정은 대규모 생산 시의 품질을 보장하기 위해 제정되었다. 수백만 회분의 약을 찍어낼 때 필요한 엄격한 통제 기준이다. 하지만 대학 연구 병원의 의사가 환자 20명에게 투여할 약을 만들고자 할 때도 동일한 상업 등급의 시설 인증을 요구받는다. 비용 격차는 황당할 정도다. 기껏해야 바이알 몇 병 분량의 약을 만들기 위해 수백만 달러를 쏟아부어야 한다.
법적으로 FDA는 1상 임상에 대해 면제 규정을 두고 있다. 하지만 그 면제 조항들의 문구가 너무 모호해서 연구자들은 이를 신뢰하지 않는다. 임상 보류(clinical hold) 처분을 받아 모든 일정이 멈추는 위험을 감수하느니, 차라리 막대한 돈을 들여 과잉 준수(over-compliance)를 택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조심스러운 규제 시스템의 전형적인 부작용이다. 서류상의 규정은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인센티브 구조가 모든 사람에게 극단적인 안전 마진을 강요한다.
여기에 임상시험심사위원회(IRB) 문제가 더해진다. 여러 병원이 참여하는 다기관 임상의 경우, NIH가 단일 IRB 심사를 수년간 권고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각 병원의 윤리위원회마다 별도의 심사를 거치고 FDA의 검토까지 따로 받아야 한다. 순전히 절차적인 이유로 심사가 수개월씩 지연된다. 학술지 Controlled Clinical Trials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IRB 심사 기간이 길어진다고 해서 환자의 안전성이 향상된다는 증거는 전혀 없었다. 그저 일정을 늦출 뿐이다.
이 모든 것이 결합된 결과, 한 달에 200만 달러를 태우는 바이오텍 기업들은 첫 환자에게 약을 투여해 보기도 전에 자금을 전부 소진해 버린다. 오늘날 퍼스트-인-클래스(first-in-class, 혁신 신약) 항암제의 대부분을 개발하는 곳이 바로 이런 중소 바이오텍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기업의 생사가 걸린 문제다.
혁신의 엑소더스
2010년에서 2020년 사이, 대형 다국적 제약사(빅파마)가 직접 발굴한 혁신 항암제는 전체의 약 4분의 1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모두 벤처 바이오텍과 대학 연구실에서 나왔다. 그리고 이들은 화이자나 로슈처럼 막대한 비용과 긴 지연을 감당할 체력이 없다.
그래서 그들은 미국을 떠나고 있다.
호주의 CTN(Clinical Trial Notification) 제도는 FDA의 IND(임상시험계획 승인) 절차와 구조적으로 정반대다. 국가 규제 기관에 방대한 서류를 제출하고 승인을 기다리는 대신, 연구자는 공인된 인간연구윤리위원회(HREC)로부터 윤리 승인을 받은 후 식약청(TGA)에 ’통보’만 하면 된다. TGA는 통보 시점에 시험 데이터를 일일이 심사하지 않고, HREC의 과학적·윤리적 판단을 신뢰한다.
그 결과 호주는 임상 신청 전 단계에서 최대 9개월, 신청 후 단계에서 추가로 3~6개월의 일정을 단축할 수 있다. 매달 200만 달러의 런웨이를 소모하는 바이오텍에게 이 기간은 생존 그 자체를 의미한다. 환자들에게는 약이 아직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시점에 투여받느냐, 너무 늦어버리느냐의 차이다.
게다가 호주는 이를 안전하게 해낸다. 의무적인 ICH GCP 가이드라인 아래에서 운영되며, 임상 등록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된다. 동물 실험에서의 위험 신호를 무시한 채 연구를 강행하다 유전자 치료 연구에서 사망 사고를 은폐했던 중국과 같은 안전 스캔들도 호주에서는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중국의 성장 역시 단순한 안전 실패 사례 몇 가지로 치부할 수 없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생산성이 높은 임상 개발 환경을 구축했다. 임상시험 승인 기간을 501일에서 87일로 단축시켰고, 1상 임상 비용은 미국보다 43% 저렴하며 속도는 50% 빠르다. 2025년 기준, 가장 혁신적인 신약에 대한 글로벌 임상시험의 3분의 1 가까이를 중국 기업들이 수행하고 있다. 불과 10년 전 5%에 불과했던 수치다.
기술 라이선싱 수치가 현실을 웅변한다. 2026년 1분기만 해도 중국의 해외 신약 라이선스 아웃(BD) 거래 규모는 600억 달러를 넘어섰으며, 이는 이미 2024년 전체 실적(519억 달러)을 추월한 것이다. 현재 글로벌 빅파마가 도입하는 신약 자산의 절반이 중국에서 나온다. 10년 전에는 5% 수준이었다.
이것은 단순히 싼값에 사들이는 것이 아니다. 글로벌 파이프라인의 구조적 재배치다. 특허 만료(Keytruda, Eliquis, Stelara)를 앞둔 빅파마들은 파이프라인 수혈이 절실하다. 자체 R&D는 느리고, 대형 M&A는 지나치게 비싸다. 중국 바이오텍들은 세 번째 길을 제시한다. 임상적으로 검증된 자산, 빠른 실행 속도, 저렴한 비용, 그리고 ADC(항체-약물 접합체)나 이중항체 같은 첨단 모달리티가 빽빽하게 채워진 파이프라인이다.
미국은 단순히 임상 건수만 뺏기고 있는 것이 아니다. 신약 개발을 실제로 굴러가게 만드는 실험실과 임상 현장 사이의 피드백 루프 자체를 잃어가고 있다.
독일의 하일페어주흐(Heilversuch) 대안
NYT 기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사례는 정식 임상시험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골육종(osteosarcoma)을 앓던 13세 소녀의 아버지가 개인 맞춤형 mRNA 백신 치료를 받게 하려고 딸을 데리고 독일로 건너간 일화였다.
독일 법률에는 하일페어주흐(Heilversuch), 즉 ’치료적 시도(healing attempt)’라는 제도가 있다. 이 프레임워크 아래에서는 의사가 규제 당국의 별도 허가 없이도, 환자의 사전 동의를 바탕으로 자신의 임상적 판단에 따라 혁신적 치료를 시도할 수 있다. 담당 의사는 화요일 저녁에 소녀에게 맞춤형 백신을 투여하기로 결정했고, 며칠 뒤 실제로 접종이 이루어졌다.
미국에서 동일한 치료를 개별 환자 대상 응급 임상(single-patient IND)으로 진행하려면 수개월이 걸렸을 것이다. 공격적인 골암을 앓고 있는 어린 환자에게는 결코 허락되지 않는 시간이다.
깃랩(GitLab)의 공동 창업자 시드 시브란디(Sid Sijbrandij) 역시 같은 문제에 직면하여 다른 방식을 택했다. 골육종이 재발하고 표준 치료법이 바닥났을 때, 그는 일종의 ’창업가 모드(founder mode)’로 전환했다. 최고의 의사와 과학자들로 전담 팀을 꾸리고, 자신의 종양을 단일 세포 수준으로 시퀀싱한 뒤, 맞춤형 백신, 방사성 리간드 치료, 엔지니어링된 세포 치료를 포함한 25개 이상의 잠재적 치료 사다리를 구축했다. 그는 현재 1년 넘게 암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cancer-free)를 유지하고 있다.
그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불투명한 의료 시스템을 뚫고 나갈 막대한 자본과 네트워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규제 컨설턴트를 고용했고, 해외로 날아갔으며, 최고 전문가들과 동등한 눈높이에서 대화할 수 있는 과학적 소양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환자들에게는 그런 여력이 없다.
이것이 바로 현재의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잔혹한 불평등이다. 생물학이 초래한 자연적 불평등이 아니라, 시스템을 우회할 경제적 여유가 있는 극소수에게만 개인화된 첨단 의료의 문을 열어주는 왜곡된 규제 프레임워크가 낳은 인위적 불평등이다.
트라이얼블레이저 작전(Operation TrialBlazer): 진정한 개혁인가, 또 하나의 시범 사업인가
2026년 6월, 미국 보건복지부(HHS)는 1상 임상 기간을 6~12개월 단축하기 위한 범정부적 이니셔티브인 ’트라이얼블레이저 작전(Operation TrialBlazer)’을 발표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고무적이다.
- 신속 IND 파일럿 프로그램: 공인 연구 기관과 협력하여 1상 IND 제출을 롤링(순차) 방식으로 진행하고, FDA 심사와 병행하여 IRB 심사 및 연구기관 활성화를 동시에 진행한다.
- 단일 임상 승인(One-trial approval): FDA는 ’두 번의 임상시험’이라는 오랜 도그마를 깨는 지침 개정안을 내놓았다. 엄격하고 잘 통제된 단 하나의 임상시험과 확증적 증거만으로도 승인이 가능해진다. 이는 증거 표준의 중대한 변화다.
- 마스터 프로토콜: 바스켓, 엄브렐러, 플랫폼 임상에 관한 지침을 업데이트하여 중복되는 인프라 비용을 줄인다.
- 1상 IND 내비게이터: 전담 웹페이지와 콜센터를 개설하고, 1상에 특화된 명확한 CMC(제조품질관리) 기준을 제시한다.
- PDUFA VIII: 2028-2032 회계연도를 위한 약정서에 미국 내에서 최소 1건 이상의 1상 임상을 진행하는 스폰서에게 신청 수수료를 50% 감면해 주는 조항을 포함시켰다. 임상 연구의 미국 내 회귀를 유도하는 직접적인 재정 인센티브다.
분명 실질적인 진전이다. 하지만 FDA는 요란하게 개혁을 발표해 놓고 흐지부지 끝낸 전력이 많다. 디지털 헬스케어 소프트웨어를 위한 사전인증(Pre-Cert) 파일럿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혁신의료기기(Breakthrough Devices) 프로그램에 선정된 제품들도 여전히 최종 허가를 받기까지 수년씩 대기하고 있다.
진짜 승부처는 처방의약품 신청자 수수료법(PDUFA)의 재승인이다. 이 법안은 의회가 반드시 통과시켜야 하는 법률이기 때문에(통과되지 않으면 FDA는 수수료를 징수할 수 없다), 의회가 규제 당국에 집중하고 구조적 개혁을 법제화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를 제공한다. PDUFA VII은 2027년 9월 만료되며, PDUFA VIII 협상은 이미 물밑에서 시작되었다.
요약
과학은 그 어느 때보다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 과거에 ’공략 불가능’하다던 RAS 변이에 대한 표적 치료제가 허가되었다. 다라손라십(Daraxonrasib)은 췌장암 환자의 생존 기간을 거의 두 배로 늘렸다. 맞춤형 mRNA 백신은 기존에 손쓸 방법이 없던 암 환자들에게서 놀라운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유전체학의 혁명과 AI 기반 신약 설계는 5년 전만 해도 이론에 불과했던 약속들을 현실로 증명해 내고 있다.
병목은 과학적 발견에 있지 않다. 발견과 환자 사이에 놓인 시스템에 있다. 산더미 같은 서류 작업, 중복되는 심사, 상업용 대량 생산에나 맞을 기준을 1상 시제품에 들이대는 경직성,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IRB 위원회, 그리고 공포심 때문에 과잉 준수를 선택하게 만드는 모호한 규제들 말이다.
다른 나라들은 환자의 안전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시스템을 다르게 운영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호주는 CTN 제도를 통해 수년째 안전하게 임상을 진행하고 있다. 미국이 독일의 하일페어주흐 제도를 그대로 베낄 필요는 없겠지만, 서류가 책상 위를 떠도는 동안 환자의 병이 악화되는 치명적인 위험은 외면한 채 모든 잠재적 위험만을 지연의 핑계로 삼는 태도는 이제 멈춰야 한다.
2027년의 PDUFA VIII 재승인은 이러한 구조적 개혁을 법으로 못 박을 단 한 번의 절호의 기회다. 미국 내 임상시험에 대한 수수료 인센티브, 1상 제조 기준의 현실적 완화, 단일 IRB 심사 의무화, 심사 기한을 지키지 못하는 당국에 대한 실질적인 페널티 등이 포함된다면 혁신의 해외 유출을 되돌릴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혁신의 이탈은 영구적인 현실이 될 것이다. 미국 연구소와 미국 환자 사이를 잇던 선순환 고리는 끊어질 것이며, 다음 세대의 소토라십은 휴스턴이 아니라 시드니나 상하이에서 테스트를 받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