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내 시선을 사로잡은 두 편의 글이 있다. 서로 다른 각도에서 출발하지만 결론은 같다: 지능(intelligence)은 현실 세계의 발전을 가로막는 결정적 구속 조건(binding constraint)이 아니라는 점이다.
스트라이프 이코노믹스(Stripe Economics)의 어니 테데스키(Ernie Tedeschi)는 생산성 데이터를 들여다보았다. 개별 작업 단위(task level)에서 AI의 성과는 압도적이다. 고객 상담원의 생산성은 14% 향상되었고, 글을 쓰는 이들의 작업 속도는 40% 빨라졌다. 컨설턴트는 25% 적은 시간으로 12% 더 많은 업무를 처리하며, 지식 노동자는 이메일 처리에 들어가는 시간을 매주 두 시간씩 아끼고 있다. 이는 모두 동료 심사(peer-reviewed)를 거친 연구들이 내놓은 실제 수치이며, 심지어 대부분 구형 LLM을 바탕으로 측정된 결과다. 현재 세대의 모델들은 이보다 훨씬 뛰어날 것이다.
그렇다면 거시경제 차원의 생산성 폭증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상황은 복잡하다. 미국의 노동 생산성 증가율은 약 2.5%를 기록하며 지난 20년간의 평균치인 1.6%를 확실히 웃돌고 있다. 하지만 경제학자들이 순수한 기술 진보의 척도로 여기는 총요소생산성(TFP)을 살펴보면, 사실상 제자리걸음이다.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은 미국 경제가 높은 TFP 성장 국면에 진입할 확률을 20% 미만으로 본다.
그렇다면 노동 생산성 지표를 실제로 밀어올리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기존 자본을 한계까지 쥐어짜내는 운영(running existing capital harder)이다. 공장 가동 시간을 늘리고, GPU 클러스터의 활용률을 극대화하며, 호텔 객실 점유율을 끌어올리는 식이다. 이는 분명 실질적인 산출물이지만, “AI가 모든 사람의 생산성을 끌어올렸다”는 뜻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모두가 AI 인프라를 짓느라 혈안이 되어 있고, 그 속도를 맞추기 위해 다른 모든 자원을 쥐어짜내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여기서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사실이 하나 있다. 기존의 추세를 통제하고 나면, AI 도입률과 산업 부문별 생산성 성장 사이의 상관관계가 사실상 0으로 떨어진다는 점이다. AI를 가장 빠르게 도입한 분야들은 애초에 이미 생산성이 높았던 산업군이었다. 지금의 데이터로는 “AI가 실질적인 도움을 준 것인지” 아니면 “어차피 생산성이 높을 산업이었는지”를 구분할 방법이 없다.
룩산드라 테슬로(Ruxandra Teslo)의 글은 이러한 현상이 왜 필연적인지 명쾌하게 설명해 준다. 의학 연구자인 그녀는 연구 현장에서 늘 동일한 벽과 마주한다: 병목은 결코 ‘과학’ 자체가 아니라, 과학을 둘러싸고 있는 ’시스템’이라는 사실이다.
임상시험을 예로 들어보자. 신약 하나를 개발하는 데 7년의 세월과 10억 달러 이상의 비용이 들어간다. 임상시험은 단순한 요식 행위가 아니다. AI 모델을 실제로 개선하는 데 필요한 인간 임상 데이터를 확보하는 유일한 과정이다. 하지만 데이터를 확보했다 하더라도 이를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 나은 바이오마커를 개발하려는 기업들은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영상 데이터셋을 공개하기를 1년씩 기다려야 한다. 미국 FDA가 골밀도(BMD)를 대체 평가지표로 공인하는 데는 무려 12년이 걸렸다. 12년이다. 이미 존재하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사실상 회귀분석을 진행하는 일에 그만한 시간이 걸린 것이다.
’에룸의 법칙(Eroom’s Law)’을 보아도 마찬가지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의 과학적 도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했음에도, R&D 투자 달러당 승인되는 신약의 수는 지속적으로 감소해 왔다. 지능과 도구는 더 좋아졌는데 수익률은 오히려 나빠졌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진짜 병목이 어디에 자리 잡고 있는지 분명히 알 수 있다.
특허 시스템은 문제를 더욱 악화시킨다. 특허는 특정 분자(molecule)를 보호할 뿐, 배후의 생물학적 메커니즘(biology)을 보호해주지 않는다. 어떤 새로운 타깃이 약물화할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내는 연구자는 모든 위험을 짊어지면서도 그에 따르는 온전한 보상을 가져가지 못한다. 첫 번째 치료제가 임상 데이터를 발표하는 순간, 경쟁자들은 이미 검증된 동일한 타깃을 겨냥해 자신들의 분자를 들고 우르르 몰려든다. 그 결과 수십억 달러의 기업가치를 인정받는 AI 바이오테크 기업들조차, 이미 검증된 극소수의 타깃을 대상으로 분자 구조를 미세 최적화하는 일에 매달린다. 시스템 자체가 미지의 영역을 탐색하기보다는 빠른 모방(fast-following)을 보상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이너 루프(inner loop)’와 ’아우터 루프(outer loop)’의 문제다. AI 코딩 도구는 개발자의 커밋 횟수와 코드 생산량을 폭발적으로 늘려준다. 하지만 풀 리퀘스트(PR)에서 프로젝트 단위로, 그리고 실제 배포되는 릴리즈 단계로 나아갈수록 그 생산성 향상의 폭은 급격히 줄어든다. 코드 리뷰, 시스템 통합, 테스트, 실제 배포는 여전히 인간이라는 병목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AI는 코드 작성 속도를 높여주지만, 소프트웨어를 세상에 내보내는(shipping) 속도까지 높여주지는 못한다.
동일한 패턴이 사회 곳곳에서 반복된다. 우리는 더 나은 주택을 더 빠르게 지을 수 있는 기술을 이미 수십 년 전부터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주거 비용이 역사상 최고 수준으로 치솟은 까닭은 기술적 역량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의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고객센터 챗봇은 여전히 대다수 사용자에게 가장 짜증 나는 경험 중 하나로 남아 있다. GDP는 증가했지만 눈이 번쩍 뜨일 정도는 아니며, 수년간 대량 실업이 닥칠 것이라던 요란한 경고와 달리 초급 직무(entry-level jobs)들은 대체로 온전하게 유지되고 있다.
경제학자 타일러 코웬(Tyler Cowen)은 2023년 프로그레스 컨퍼런스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술의 역량은 그 기술이 현실에서 만들어내는 실질적 변화보다 훨씬 빠르게 도달할 것이며, 요란한 기대에 비해 GDP 성장은 실망스러울 것이고, 대규모 일자리 파괴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그의 예측은 옳았다. 그리고 이 흐름을 미리 내다본 이들은 마찰(friction)에 대한 감각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새로운 기술이 현실 세계로 확산(diffuse)되는 과정이 얼마나 느리고 울퉁불퉁한지를 체감하고 있었던 이들이다.
반면 이를 내다보지 못한 이들은 누구였는가? 샌프란시스코의 특정 집단, 이제는 일종의 거대한 단일 문화(monoculture)가 되어버린 그 커뮤니티다. 그 바닥에서는 AGI가 세상을 완전히 바꾸어놓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하는 순간 지적인 위상이 깎여나간다. AI의 초기 물결을 정확히 포착해 천문학적인 부를 거머쥔 이들은, 그 거대한 한 번의 성공을 근거로 자신들이 모든 영역에서 항상 옳을 것이라는 오만에 빠져들었다. 조금이라도 과격한 주장에 의문을 제기하면 지능이 떨어지거나 “AGI에 대한 깨달음(AGI-pilled)“이 덜 된 사람으로 낙인찍힌다.
그 결과 남은 것은 자기검열과 위선적인 반골 기질(counterfeit contrarianism)뿐이다. AI 연구소 내부의 똑똑한 인재들은 자신들만이 미래에 대한 특권적 지식을 독점하고 있다고 굳게 믿는다. 주변의 다른 이들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그러는 사이 주거 위기, 인간의 탈숙련화(de-skilling), 해체되어 가는 사회적 유대, 책 한 줄 읽으려 하지 않는 지적 나태함 같은 진짜 현실의 문제들은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방치되어 쌓여가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올바른 프레임은 이것이다: AI는 이미 명확하게 정의되고 경계가 설정된 개별 작업들을 가속하는 데 매우 강력한 도구다. 하지만 개별 작업의 생산성이 현실의 의미 있는 결과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마주치는 제도적, 규제적, 경제적 마찰을 녹여 없애주는 도구는 결코 아니다. 이 두 가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이를 혼동할 때 우리의 우선순위는 엉뚱한 곳으로 빗나가게 된다.
의학 분야에서는 규제 개혁이 가져올 수 있는 거대한 파급력에도 불구하고, 스포트라이트의 극히 일부분만이 규제 논의에 할애될 뿐 대부분의 관심은 AI 신약 개발이라는 화려한 구호로 쏠린다. 테크 업계는 당장 해결해야 할 투박하지만 치명적인 문제들을 외면한 채 오직 AGI라는 환상에만 집착한다. 거시경제에서는 단순한 설비 가동률의 상승이 마치 근본적인 생산성 혁신인 양 둔갑하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AI가 가져오는 생산성 향상은 분명 실재한다. 하지만 세상의 근본적인 변화는 그 방 안에 모여 앉은 그 누구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을 만큼 느리게 진행된다. 그리고 현실의 발전을 가로막는 결정적 구속 조건들은, 거의 언제나 지능의 결여와는 무관한 곳에 놓여 있다.
참고자료: